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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렉시트에 동감하는 사람은 나 뿐인가  Economy/finance 

2016.06.26. 0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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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렉시트 투표 결과의 정치적인 해석


금요일 오후, 영국이 EU에서 탈퇴하는 것이 확정됐을 때 이미 코스피 주가지수는 한바탕 미끄럼을 타고 난 후였다. 한국언론은 이 "브렉시트"를 상당히 나쁜 각도에서 바라보고 있다. 영국뿐 아니라 세계 경제에 위기가 올 것이며, 영국의 저소득층/고령층/저학력층, 즉 '무지한 대중'이 멍청한 짓을 했다는 식이다. 브렉시트 이후 영국 구글 검색어 1위가 "브렉시트가 무엇인가요" 2위가 "EU가 무엇인가요"라는 루머도 영국 멍청이 이론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인터넷엔 영국인들을 비웃는 댓글들이 가득하다.


그런데 언제부터 우리 한국이 영국보러 멍청하다고 깔볼 수 있는 수준에 올랐는지 모르겠다. 우리가 언제부터 그렇게 대단한 나라였나? 한국이 영국보다 국수주의가 덜 한가? 간단히 숫자 몇 개로 영국과 한국의 상황을 비교해보자.


평균국민소득: 영국이 거의 두 배

핵무기: 영국 250 개 vs. 한국 0 개

- 민주주의 역사: 영국 801년 vs. 한국 68년

- 2014년 받아들인 난민의 수: 영국 29,753 명 vs. 한국 94 명



지금 한국은 군사독재자의 딸까지 대통령으로 뽑아준 나라다. 우리가 민주주의 종주국 영국의 투표 결과를 보고 비판할 자격이나 있는지 모르겠다. 한국은 난민도 거의 받지 않고 '핏줄' '단일민족' 판타지를 먹고사는 나라다. 이런 한국이 매년 수만 명의 난민을 받아들이는 영국보러 反세계화 하냐며 비난할 자격이 되는지 모르겠다. 주제파악이 안 되는 것 같다.


이렇게 엉뚱하게도 한국에서 반 브렉시트 여론이 형성되고 있는데는 언론의 책임이 크다. 한국 언론은 대부분 영국의 가디언, 더타임스, FT, 그리고 미국의 뉴욕타임스와 WSJ, AP통신 등의 보도를 보고 외신기사를 쓴다. 그런데 이들은 죄다 브렉시트에 반대하는 입장이었다. 고학력자/부자/기득권층이 보는 신문이기 때문이다. 가디언과 더타임스의 독자는 70% 이상이 대졸 이상의 학력이고, FT는 아마 100%에 가까울 거다. 엘리트들을 위한 신문이니 당연히 세계화에 찬성하는 논조의 글이 나올 수 밖에 없다. 가디언에 좌파 색채가 있다고 해서 이게 노동자들을 위한 신문이라고 착각하지 마라. 주독자는 강남좌파다. "Guardian readers are affluent, young urban consumers"라고 자기들 스스로도 말한다. 독자 89%가 전문직/사무직이다(업계 용어로 ABC1 클래스)


이들과 달리 한국에 내용이 잘 보도되지 않는 영국 신문으로는 더 선, 데일리메일 같은 타블로이드판형의 신문들이 있다. 엘리트가 아닌 대중들을 위한 신문이고, 그래서 가격도 싸다. 몇백 원 정도다. 우습게 볼 게 아니다. 판매부수는 가디언이나 더타임스같은 고상한 브로드쉿(broadsheet) 매체의 몇 배에서 몇 십배다. 이렇게 고상한 매체들과 대중적인 매체들이 각각 고소득층과 저소득층의 경제적, 정치적, 사회적 이해관계를 대변해주고 있다. 그런데 한국 기자들은 죄다 가디언하고 뉴욕타임스만 보니까 '영국인들이 멍청한 짓 해놓고 이제 와서 다들 후회하는구나'라고 생각하며 기사를 쓴다.


이런 상황에서 머리의 균형을 잡기 위해 추천하는 기사는 아래의 3개다.


1. 한국일보 안현우 런던발 기사 "목소리 없는 영국인들이 브렉시트라고 말했다"

한국에 전해지지 않은 현지 중산층/저소득층의 목소리를 들려주고 있다. 세계화의 과실은 거의 고소득층, 글로벌 엘리트들에게 집중되고 이 부가 아래로 흘러내리지 않는다는 건 피케티가 이미 잘 설명한 바 있다. 브렉시트로 영국 경제가 약간 위축된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고소득층의 문제지, 일반 대중에겐 별 영향이 없을 거라고 브렉시트 찬성파들은 생각하고 있다. (나도 그렇게 생각함). 


혹자는 이제 영국 젊은이들이 유럽에서 일자리를 찾기도, 친구를 만나기도 어려워졌다고 하는데, 그것도 참 엘리트적인 환상이다. 영국 젊은 층에서 외국어를 하나라도 할 줄 아는 사람의 비율이 얼마나 될까? 단 한 명이라도 외국인 친구가 있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전체의 5%도 안 될 거다(리디아님 댓글보고 검색해보니 실제로는 1/4 정도). 어차피 외국에서 일하거나 외국인과 결혼할 의향이 있는 사람들은 소수의 고학력층뿐이다.


2. 김흥종 대외경제정책연구원 동아일보 기고: 브렉시트 이후, 좌표도 등대도 없는 길

영국은 미국, 캐나다, 호주, 인도 등 구 대영제국 국가들과 여전히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어서 원래부터 유럽에 속박된 나라가 아니었다. 브렉시트로 판이 어떻게 짜여질 지는 전혀 정해진 바가 없기 때문에 우리도 이제 냉정하게 생각해서 우리의 이익을 위한 무역 협상에 빨리 들어가야 한다는 조언. 이 기고문은 브렉시트 발표가 나고나서 24시간도 되지 않아 신문에 실렸다. 필자가 평소부터 이 문제에 대해 생각이 깊었기 때문에 남들보다 두 세 걸음 앞선 글이 나올 수 있었을 것이다. 솔직히 놀랬다. 앞으로 이 분의 글은 눈여겨볼 생각.


3. 래리 서머스의 FT 기고문: 브렉시트의 파장이 시작된다 (econophysics 블로그 번역본)

로렌스 서머스는 미국 재무장관, 하버드대 총장들을 지낸 글로벌 엘리트의 끝판왕 같은 사람이다. 주류중의 주류라고 볼 수 있다. 그는 주류의 입장에서 브렉시트를 해석하고 있다. 요약하자면, 안심하긴 이르지만 시장에 심각한 위기가 올 단계는 이미 지났다. 다만 정치적으로는 다른 유럽국가에서도 독립 요구가 나올 수 있고, 무엇보다 미국의 트럼프 당선이 현실이 될 수 있다. 미국인들이 브렉시트를 보고 트럼프를 더 지지하게 된 것은 아니다. 다만 기존의 여론조사기법과 전문가들이 '조용한 대중'의 표심을 제대로 읽지 못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이는 한국의 지난 국회의원 선거에서도 드러난 바 있다. 전문가들은 대체로 자기와 비슷한 배경과 학력의 사람들만 만나기 때문에 대중들도 그럴거라 착각하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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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적으로 보면 이번 브렉시트 투표는 "우리 얘기도 좀 들어달라"는 중산층과 저소득층의 목소리를 성공적으로 전한 것이다. 경제적 손실은 있을 수도 있지만, 두 발 전진을 위한 한 발 후퇴라고 볼 수도 있다. 이대로 계속 엘리트층만을 위한, 엘리트층에 의한 정치가 계속된다고 세상이 좋아지진 않을 것이라는 것은 작년에 피케티가 이미 충분히 애기한 바 있다. 서민들의 목소리를 좀 더 잘 들어달라는 경고의 메시지가 나온 것이다. 정치인들도 가디안만 보지 말고 더 선도 좀 읽어보라고 외친 것이다.


런던이 금융산업으로 부흥하는 동안 중소도시들 특히 중소 제조업, 서비스업은 일자리를 잃었다. 국가 전체 GDP가 늘어나느냐 줄어드느냐와는 관계없이 중하소득층의 삶은 우울해졌다. 특히 돈으로 표현되지 않는 삶의 질, 자존감과 자존심에 상처를 입었다. 상황이 이런데도 지도층은 계속 경제가 피해를 보고... 영국이 약해지고... 이런 식의 교과서적인 얘기만 하고 있으니 사람들은 더욱 화가 나는 것이다. 오바마 역시 불에 기름을 끼얹었다. 정상회담 후 기자회견에서 '브렉시트할 경우 국제사회에서 영국의 영향력이 떨어질 것이다'라는 요지의 경고를 보냈다. 빈정대는 말투였다. 이 말을 듣고 영국의 대중들이 과연 겁을 먹었을까? 오히려 화를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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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바마, 라가르데(IMF총재) 같은 똑똑한 부자들의 경고는 이제 일반인들에게는 화이트노이즈다"라는 분석이 나왔다. 대중들은 더 이상 엘리트의 말을 믿지 않는다. 현실을 파악하지 못하는 엘리트들의 착각이 언제까지 계속될 지 의문이다. 나는 솔직히 트럼프가 이번에 미국 대통령이 돼서, "GDP"라는 말 자체를 사전에서 그리고 경제 아젠다에서 삭제해줬으면 하는 바램이 있다. GDP는 철저히 20세기적인 개념이다. 21세기에는 더 이상 큰 의미가 없다. 그런데도 엘리트층은 습관적으로 GDP 성장을 국가 최대 목표로 삼고 있다. 일반 대중들만큼의 경제감각도 없다.



영국경제에 대한 영향


투표 전 IMF의 예상에 따르면 향후 영국의 GDP는 1~5% 정도 감소할 거라 한다. 그런데 중산층과 저소득층 입장에선 지디피 좀 떨어져도 별 상관없다. 내가 좀 가난해지더라도  벼락부자새끼들이 쫄딱 망해버리면 나는 상대적인 행복감과 자존감을 느낄 것이다. 외국인 뱅커들 다 쫓아내고 대형은행 다 쫓아내서 런던 집값 내려가면 그것도 행복 플러스 요인이 된다.


그리고 IMF의 예측이 맞는다는 보장도 없다. 저 단체는 자기들의 이익과 입장이 걸려있기 때문에 일부러 저런 암울한 해석을 했을 수도 있다. 금요일 투표결과 발표 이후 영국 FTSE100 지수가 4% 하락해서 마감했는데, 일주일 전과 비교하면 오히려 2%정도 오른 수치다. 걱정했던 만큼 영국 자국내 경제에 큰 타격은 아닐수도 있다는 증거다. 특히 하락종목이 은행과 보험 등 금융업에 집중되어있었고(대형은행중엔 20% 가까이 떨어진 곳도 있다) 나머지 제조업에서는 오히려 상승한 종목들도 있었다. 파운드화의 가치가 떨어지면서 수출 경쟁력이 늘어나기 때문에 제조업은 살아날 거라는 전망 때문이다. 관광산업 역시 파운드 약세의 혜택을 본다. 특히 일부 브렉시트파의 주장처럼 영국이 EU의 복잡한 규제에서 벗어나게 된다면 영국경제가 오히려 더 좋아지는 계기가 되지 말란 법도 없다. 


남은 문제는 환율, 그리고 금융산업이다. 언론에서는 또 전세계 금융가가 '전혀 예상치 못한 쇼크를 받았다'는 식으로 표현하지만 실은 과장이다. FT만 봐도 이미 일주일 전부터 브렉시트 후폭풍에 대한 기사들이 줄줄 나오고 있었다. 1주일 전부터 FT에는 '브렉시트가 통과되면 파운드-달러 환율이 $1.40 후반에서 $1.30 정도로 떨어질 것'이라는 아주 정확한 기사들이 실리고 있었다. 금융시장에 나와있는 옵션 계약들을 분석해서 쓴 기사였다. 파운드화 폭락에 베팅한 ('숏'에 걸려있는) 금액만 해도 60억 달러였다. 이렇게 베팅한 금융사들은 다들 떼돈을 벌었을 것이다. 또 투표 전날에는 길거리 환전소에 길게 줄 서 있는 뱅커들의 모습도 1면 사진으로 보여줬다. 브렉시트가 통과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면서, 사람들이 가지고 있던 파운드화를 달러화로 바꾸기 위해 나온 것이다. 결국 금융가에서는 이미 다 어느 정도는 브렉시트에 대비하고 있었다는 얘기다. 대형 은행들도 이미 스트레스테스트를 마쳤다. 


사실 이 정도의 금융자산 가격 요동은 산업에 오히려 도움이 된다. 주식이든 채권이든 외환이든 가격이 이렇게 때때로 널뛰기를 해줘야 꾼들이 장사를 할 수 있다. 너무 평온하고 평평하게만 진행되는 시장에서는 트레이더들이 돈을 벌 수가 없다. 이번 파운드화 10% 하락은 이미 정확한 수치로 예견된 이벤트였고, 거기 대해서 기관들은 이미 다 헷징도 하고 베팅도 하고 준비를 다 해놓았을 테니 큰 손해를 봤을 리도 없다. 리만브라더스 사태 때와는 상황이 전혀 다르다. 이건 위기도 아니다. 오히려 재밌는 판이 벌어진 상황이다.


17일자 FT 기사중에 재밌는 게 하나 있었다. 어느 대형 펀드매니저의 코멘트였다. 자기는 이미 1년전부터 영국 주식은 전혀 사지 않고 현금을 모아두면서 투표날만을 기다려 왔다는 거다. 브렉시트가 통과되면 파운드화가 폭락할거고 영국 기업의 주가도 떨어질테니, 바로 그때 주식을 싸그리 사들이겠다는 거다. 영국 자산의 경우 환율과 주가 영향을 합하면 하루아침에 가격이 10~20%나 떨어진 셈이니 외국 펀드매니저 입장에서 보면 완전 바겐세일이다. 기업의 실적 전망에 딱히 큰 변화가 생긴것도 아니다.



한국 경제에 대한 영향 


영국 FTSE100 지수가 4% 떨어졌는데, 지구 반대편의 코스피와 코스닥 지수가 엉뚱하게 왜 3~4% 빠지나 싶다. 이것 자체가 지금 세계 경제 시스템이 뭔가 대단히 잘못 되었다는 뜻이다. 실물경제의 움직임이 아니라 투기꾼들(금융자본)의 움직임에 따라 주가가 널을 뛰니 말이다. 영국이 브렉시트를 하든 말든 한국의 실물경제에 주는 영향은 미미하다. 현재로서 유일한 영향은 환율에서 온다. 파운드야 뭐 그렇다 치고 옆나라 엔화 환율이 대폭 올라버렸으니 일본 기업의 가격 경쟁력이 떨어지고, 한국의 수출기업들은 이득을 볼 것이다. 아마 지금도 현대차 같은 곳은 표정관리하느라 힘들 것이다. 브렉시트 때문에 유럽에서 실물 수요가 줄어들고 한국의 수출에도 타격이 올 거라는 얘기도 있긴 있다. 하지만 그것은 순전히 주관적인 추정일뿐이다. 아무런 팩트의 뒷받침이 없다. 갑자기 유럽사람들이 살림살이를 줄여야 되는 이유가 있나? 그냥 불안하고 잘 모르겠으니까 보수적으로 생각하는 게 이른바 전문가들, 경제 애널리스트들의 습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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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지고보면 브렉시트가 구체적으로 어떤 변화를 가져올 것인지에 대해서 아는 사람도 아직 아무도 없다. 애초에 브렉시트라는 거 자체가 선언적인 의미였지, 뭘 어떻게 바꿀 지에 대해 정의된 바는 없다. 앞으로 영국 의회와 EU 의회에서 수년간에 걸쳐 정리해 나갈 것이다. 이들이 자신들에게 큰 타격을 주는 일을 할 정도로 바보들은 아니다. 영국 말고도 스위스, 노르웨이 등 유럽 안에 있으면서 EU와 어느 정도 거리를 두고 있는 나라들이 많다. 영국은 미국과의 특수관계도 있고 영어를 사용한다는 장점이 있기 때문에 저런 나라들보다 잘 되지 말란 법이 없다. 아마 이번 주말이 지나면서 사람들의 흥분심리가 가라앉으면 글로벌 금융시장도 안정을 되찾을 것이다. 이런 기대 속에서 나는 얼마 전 입금된 책 번역료를 탈탈 털어서 금요일 오후에 코스피를 샀다. 고고고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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